글로 그리는 하루/창작무협

《천마신보: 패를 쥔 자들》 2편 - 첫 충돌, 불꽃과 어둠

챨스씨 2025. 4. 12. 11:59


《1장 – 의심과 배신》

암영종 – 암흑의 궁

광부는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두 눈엔 공포와 불신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조각을 다크 프린스에게 건넸지만, 그것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땐 이미 늦었다.

“말해라. 어디로 넘긴 거냐.”

다크 프린스의 목소리는 냉혹했다. 붉은 망토 끝자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고, 그의 창끝은 광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진짜야… 나도 놀랐어. 조각을 건넨 건 분명한데… 갑자기, 사라졌어…”

광부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지만, 암영종은 배신자를 쉽게 믿지 않았다.

페카는 묵묵히 뒤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라바 하운드는 그의 발밑에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때, 회랑 끝에서 그림자처럼 걸어 들어온 존재가 있었다.

“그만하지.”

암영종의 수장, 로얄 고스트였다. 그는 조용히 움직였고, 누구도 그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다크 프린스가 창을 거두며 무릎 꿇은 채 묻는다.

“조각이 사라졌습니다. 해골 왕의 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로얄 고스트는 조용히 광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냉정했다. 생과 사를 판가름하는 차가운 눈빛.

“광부는 조각을 넘겼다. 하지만 사라진 건 그 순간부터였다.”

그는 천천히 걸어가며 말한다.

“그렇다면 해골 왕은, 광부와 우리 모두의 ‘다음 수’를 예측하고 있었단 뜻이지.”

“우리를 모두… 이용한 건가요?”

“아니. 시험한 거다.”

로얄 고스트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누가 이 ‘힘’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는 광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뜻밖에도 그를 구했다.

“쓸모 있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광부는 충격과 감사의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너는 다음 조각의 위치를 조사해. 북천궁으로.”


천무맹 – 백련산장

천무맹 본부에선 더 큰 혼란이 퍼지고 있었다.

“우리 안에 배신자가 있다.”

발키리의 말은 전 장로들이 모인 회의장에서 던져졌다.

“협곡 작전 직후, 우리의 움직임이 암영종 측에 완벽히 읽히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내부 정보를 흘린 겁니다.”

장로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퍼졌다. 특히 전략을 담당하는 노장로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정탐병들을 모두 다시 조사해야 하겠군.”

“이미 그중 한 명을 잡았습니다.”

발키리는 손에 묶인 한 남자를 끌고 들어왔다. 그는 지쳐 있었고, 온몸에 채찍 자국이 선명했다.

“이자는 천무맹 정보반 소속. 암영종에 작전 이동 경로를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메가나이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누가 시켰지?”

하지만 그 남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슉!

창문 밖에서 날아온 검은 화살이 그의 목을 꿰뚫었다.

피가 튀며 남자는 쓰러졌다.

“암살?!”

머스킷병이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메가나이트는 창밖을 향해 외쳤다.

“경계태세! 궁내에 암자가 숨어 있다!”

병사들이 달려가 창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이미 암살자는 사라진 뒤였다.

발키리는 피 튄 바닥을 응시하며 낮게 말했다.

“… 배신자는 아직 우리 안에 있다.”

마법사는 침묵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 단순한 싸움이 아닙니다. 내부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씨앗이 뿌려졌던 겁니다.”

그림자 속의 시선

그날 밤.

천무맹 궁 안의 어딘가, 한 장의 편지가 그림자 속에서 전달되었다.

『두 번째 조각의 흔적, 북천궁에 있음.
그러나 조심하라. 그곳은 ‘그들’의 땅이다.』

편지를 건넨 자는 검은 로브에 얼굴을 가린 인물이었다.
받은 이는, 천무맹의 고위 간부 중 하나였다.

“마침내… 다음 조각이다.”

그의 눈동자엔 충성도 명예도 없었다. 오직 욕망과 이익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2장 – 천무맹의 그림자》

백련산장, 다음 날 새벽

희미한 안개가 산장을 감싸고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천무맹의 본진, 백련산장. 새벽녘의 고요함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했지만, 내부는 요동치는 불안과 의심으로 들끓고 있었다.

마법사는 장서각에서 고대의 문서를 뒤적이고 있었다. 수백 년 전 기록된, 봉인의 마법과 천마신보에 얽힌 전설.
그의 눈은 한 문장에서 멈췄다.

“오욕(五獄)의 조각이 모두 깨어날 때, 봉인된 신보가 주인을 선택하리니.”
“그러나 그 주인조차, 신보에 먹히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마법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 이건 단순한 권력의 도구가 아니다. 재앙이다.”

그는 조용히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마침 복도 건너편에서 나이트와 발키리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 방금 귀한 문헌을 확인했다.”
마법사가 말하자 둘이 멈췄다.

“해골 왕이 말한 봉인, 그건 사실이야. 조각 하나하나에 봉인의 마법이 새겨져 있어. 조각을 가진 자가 원한다면, 그 힘을 일시적으로 끌어낼 수도 있어. 하지만 대가가 있어.”

나이트가 눈썹을 찌푸렸다.
“어떤 대가?”

“영혼이 갉아먹히는 거다.”

그 말에 발키리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러면 해골 왕은 그 위험까지 알고 조각을 가져간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아.”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신보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그 힘을 기꺼이 쥐려는 자다.”

“… 하지만.”
발키리는 말을 이었다.
“우린 그런 자들만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니야.”

같은 시각, 산장 지하 밀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지하. 무겁게 잠긴 문 너머,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암영종과 내통한 혐의로 잡힌 내부 간자의 동료였다.

“드디어 오셨군요.”

그는 문 너머 어둠 속 인물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모습을 드러낸 이는…
천무맹의 중간 간부 중 하나, 윤부장(尹部長)이었다.

“입은 다 물었겠지?”

“예. 죽기 직전까지도 아무 말 없었습니다. 단, ‘그분’이 걱정되긴 합니다.”

윤부장은 조용히 천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걱정 마라. 그분께선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이미 다음 단계를 시작하셨다.”

그는 그림자 속에서 밀서를 내밀었다.

『조각은 북천궁으로 이동 중. 그대들은 접선 후, 세 번째 조각을 회수하라.
그리하여 신보의 본체를… 우리 손에.』

“이번 임무엔 직접 ‘그녀’도 움직인다고 하더군.”

“… 그녀라면 혹시…?”

“그래. 그림자검, 섀도우 아처가 나섰다.”

그 말에 무릎 꿇은 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다시 백련산장 – 작전실

메가나이트는 말없이 작전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각이 사라진 직후, 강호 전역에서 이상한 동향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조각 싸움이 아냐.”
그가 중얼였다.

머스킷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보에 따르면, 다음 조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북천궁, 그리고 폐허가 된 낙월성입니다.”

“북천궁이라…”
발키리는 순간 눈빛을 바꾸며 중얼거렸다.
“거긴… 예전 ‘낙인자’들이 봉인된 곳이잖아.”

마법사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맞아. 천무맹에서도 접근을 금지한 봉인의 땅. 그곳이 열렸다면, 누군가 일부러 그 봉인을 깨트린 거야.”

“해골 왕일 가능성이 높다.”
나이트가 눈을 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꺼림칙한 건…”

“우리 내부의 움직임이지.”
메가나이트가 마저 이었다.
“배신자가 여럿이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위쪽’까지 손을 뻗었다.”

말이 끝나자 모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날 밤, 산장 뒤편 숲 속

그림자처럼 나타난 여인이 있었다.
긴 망토, 새까만 활, 그리고 아무 소리도 없는 걸음.

바로, 섀도우 아처.

그녀는 짧게 웃었다.
“천무맹이 또 분열되고 있군.”

그녀는 활을 들어 은빛 달을 조준하듯, 하늘을 겨눴다.
그리고 스스로 중얼거렸다.

“… 이제, 조각을 쥘 자는 하나로 정해져야 해.”


《3장 – 그림자 속에서》

한밤중, 낙월성 폐허

달빛조차 닿지 않는 폐허 위에, 검은 망토를 두른 인물이 홀로 서 있었다. 해골 왕.

그는 천천히 낡은 성의 중앙 탑으로 들어가, 반쯤 무너진 제단 앞에 멈췄다.
그 손엔 여전히 작은 검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오욕(五獄)의 첫 조각이 여기까지 왔다.”

그는 조각을 꺼내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순간, 제단이 낮게 진동하며 붉은빛을 뿜어냈다.

“… 반응하는군.”

그때였다. 등 뒤에서 바람처럼 다가오는 기척.
해골 왕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왔군. 로얄 고스트.”

그림자처럼 조용히 나타난 로얄 고스트는 검은 두건 아래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먼저 이곳을 선택할 줄은 몰랐군.”

“여긴 오욕의 조각이 반응할 수 있는 봉인의 중심지다. 두 번째 조각이 이곳을 향하고 있지.”

“그러면 너도 정보를 쥐고 있는 셈이군.”

“정보를 나누러 온 게 아니겠지.”

로얄 고스트는 한 발 다가섰다.
“그 조각을 넘기면… 너와 내가 함께 신보를 손에 넣을 수도 있어.”

“… 아직도 그런 말을 믿는가.”

해골 왕은 냉소를 띠며 조각을 손에 다시 쥐었다.

“신보는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완전히 쥘 수 없지. 다만, 더 오래 쥘 자가 있을 뿐.”

“그게 바로 ‘우리’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로얄 고스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암영종은 더는 무모한 분열을 버틸 수 없어. 페카는 힘으로, 다크 프린스는 욕망으로, 라바 하운드는 분노로 이끄는 자다. 그들에겐 계산이 없지.”

“그리고 넌 그림자에서 통제하겠다는 거군.”

“너도 다르지 않잖아, 해골 왕.”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해골 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좋다. 두 번째 조각이 낙월성에 도착하면, 그때 다시 만나지.”

“그땐 동맹인가, 전쟁인가?”

해골 왕의 붉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 아마 둘 다가 되겠지.”


한편, 북천궁 남쪽 – 암영종 진영

페카는 거대한 검을 수련장에서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주위엔 아무도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다크 프린스와 라바 하운드마저 멀리서 조용히 지켜볼 뿐.

그때, 로얄 고스트가 돌아왔다.
그는 장막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움직일 차례다.”

페카는 잠시 멈추고, 한 손으로 검을 내려놓았다.
“… 낙월성으로?”

“그래. 해골 왕이 그곳에서 두 번째 조각을 기다리고 있다. 조각은 이제 곧 도착할 거야.”

다크 프린스가 물었다.
“그리고 그 조각을 가진 자는?”

로얄 고스트는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섀도우 아처.”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라바 하운드조차 눈을 번뜩였다.
“그녀는… 우리 쪽인가?”

“아직은.”

그 대답이 의미심장했다.

동시간, 천무맹 – 작전 회의

메가나이트는 작전도를 내리치며 외쳤다.

“두 번째 조각의 이동 경로는 확인됐다. 북천궁을 경유해 낙월성으로 간다.”

머스킷병이 말끝을 물었다.
“그걸 누가 가져가고 있습니까?”

마법사가 대답했다.
“암영종의 고용인이긴 한데, 정보가 흐릿해. 단독으로 움직인다고 들었어. 그리고…”

그가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녀는 한때 우리 쪽 첩자였다.”

발키리와 나이트가 동시에 눈을 떴다.
“…섀도우 아처?”

“그래. 과거 암영종에 침투한 이중 스파이. 하지만 어느 순간, 양 진영 모두와 연락을 끊었지. 지금은…”

“조각을 들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낙월성으로 향하고 있다.”

그 시각, 폐허를 향해 걷는 한 여인

섀도우 아처.
그녀는 어깨에 작고 낡은 보자기를 둘러멘 채, 깊은 폐허 속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안에는 두 번째 조각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흔들림 없이 곧았고, 발걸음은 그림자처럼 조용했다.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아.”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 조각은… 나를 위해 존재하니까.”

《4장 – 낙월성의 밤》

달빛 아래, 폐허의 성곽

낙월성은 수백 년 전 멸문한 북월파의 본거지였다. 지금은 무너진 성벽과 무성한 잡초, 그리고 들리지 않는 바람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 그 고요는 끝났다.

먼저 도착한 이는 섀도우 아처였다. 그녀는 오래된 지하 제단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살피며, 등에 맨 조각이 반응하는 걸 느꼈다.

“… 이곳이 맞아.”

제단 앞, 해골 왕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조각… 나에게 넘기지.”

“간단히 끝낼 생각은 마.”

섀도우 아처의 손에 어둠을 품은 화살이 걸렸다. 해골 왕은 그저 웃었다.

“그래, 네 선택은 항상 옳았지. 문제는—”

쾅!!

지하가 크게 흔들렸다. 먼지가 흩날리고, 멀리서 철의 충돌음이 들렸다.

“천무맹이다!”

머스킷병이 장총을 들고 안으로 돌입했고, 그 뒤엔 메가나이트와 나이트, 발키리, 마법사까지 함께였다.

“조각을 내놔라, 해골 왕!”

해골 왕이 코웃음을 쳤다.
“천무맹도 이제 꽤 단결했군. 그러나…”

쾅—!!!

지면이 무너지고, 불꽃이 튀었다.

암영종.
검은 갑옷을 입은 페카, 눈빛을 번뜩이는 다크 프린스, 타오르는 라바 하운드, 그리고 그들 뒤에서 모습을 감춘 로얄 고스트가 등장했다.

“여기서 끝내자.”
페카가 검을 들며 앞으로 나섰다.

제단 위, 셋이 마주하다

섀도우 아처는 메가나이트와 페카 사이에 서 있었다. 조각은 그녀의 어깨 뒤에서 은은한 빛을 뿜고 있었다.

“이 조각이 누구의 것이든… 그것은 나와 무관해.”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왜 그런 눈을 하고 있지.”
나이트가 물었다.
“우린 한때…”

“그 ‘한때’는 지나갔어.”
섀도우 아처가 눈을 돌렸다.
“지금 이 조각이 향하는 길은… 이곳이 아니야.”

그녀는 조각을 꺼내 제단 위에 올렸다.

해골 왕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만두지 마라… 네가 방금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구나.”

붉은빛이 번져나가고, 지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조각이 반응하고 있어!”

마법사가 외쳤다.
제단에서 빛의 문양이 퍼지고, 강력한 기운이 주변을 휘감았다.

그때
로얄 고스트가 움직였다.
그는 순식간에 섀도우 아처 뒤로 접근해 칼날을 들이댔다.

“이제 선택해. 나와 함께할 것인가, 혹은—”

그러나 섀도우 아처는 몸을 돌리며 화살을 발사했다.
화살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누구도 따라가지 않아.”

전면 충돌

페카가 검을 땅에 내리치자 지면이 갈라졌고, 메가나이트는 그 위를 뛰어넘으며 페카를 덮쳤다.

“이 끝은 너로부터 시작됐다!”

다크 프린스와 나이트의 창검이 부딪쳤고, 발키리는 라바 하운드의 불꽃을 가르며 싸웠다.

해골 왕은 제단 앞에서 조각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엔 아직 첫 번째 조각이 있었다.

“이제 두 개가 모였다. 세 번째가 오면…”

그때—
제단 아래에서 정체불명의 기운이 일렁였다.

“저건…?”

섀도우 아처가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이건 내가 본 봉인의 반응이 아니야!”

해골 왕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늘어졌다.

“누군가… 이미 세 번째 조각을 가져온 모양이군.”

어딘가, 강호의 또 다른 어둠

복면을 쓴 인물 하나가, 검은 천에 싸인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엔—세 번째 조각.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군.”

《5장 – 인연, 칼끝 위에 서다》

검은 안갯속의 탈출

낙월성의 지하는 붉은빛과 진동으로 뒤덮여 있었다. 제단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세 개의 조각이 모두 연결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모두 빠져나가!”

메가나이트가 포효하며 퇴로를 열었고, 발키리는 부상당한 마법사를 부축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머스킷병은 총구로 다가오는 라바 하운드를 저지하며 뒤를 맡았다.

하지만…

“섀도우 아처! 이쪽이다!”
나이트가 외쳤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조각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그 눈빛은, 마치 무언가를 결심한 자의 눈이었다.

“왜 이러는 거야! 함께 가자고 했잖아!”
나이트가 다급히 뛰어왔다.

“넌 아직도… 그때 그 말을 믿고 있구나.”

섀도우 아처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의 손에 든 활은 이제 조각의 기운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어, 나이트.”

“그 길을 함께 만들자고 했던 건 너였잖아.”

“… 그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

과거 – 2년 전, 무림 산간

섀도우 아처는 원래 천무맹의 첩자였다.
그녀는 암영종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고, 그 임무 중 나이트와 처음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 적의 진영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눈이 마주쳤고, 같은 전장을 지나며 서로를 돕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느 밤, 달빛 아래.

“언젠가 강호가 평화로워지면… 함께 떠나고 싶어.”
섀도우 아처가 속삭였다.

“… 그때, 난 너와 함께할 거야.”
나이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신분을, 그리고 진실을 숨긴 채 약속했다.

현재

“그날, 거짓말을 한 거였지?”
나이트가 말했다.

“… 아니.”
섀도우 아처의 눈이 흔들렸다.
“그날만큼은 진심이었어.”

제단의 폭발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조각의 힘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 해골 왕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늦었군.”

그는 손을 뻗어 조각을 가리켰다.
“봉인은 곧 풀린다. 그리고… 네놈들의 감정은 그 어떤 힘보다 치명적인 약점이야.”

“닥쳐.”
나이트가 검을 치켜들었다.

“네가 뭘 안다고.”
섀도우 아처가 활을 겨눴다.

해골 왕은 미소 지었다.
“정말 모르겠다고 생각해? 천마신보가 왜 ‘사랑’을 두려워하는지….”

그 순간

붉은 폭발이 터졌고, 제단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잠시 후 – 폐허 속, 조각의 행방

천무맹과 암영종의 전사들은 모두 후퇴했고, 낙월성은 붕괴 직전의 폐허가 되었다.

머스킷병이 조용히 말했다.
“조각은… 또 사라졌군.”

마법사가 무언가를 감지했다.
“아냐. 아직 이 근처에 있어. 누군가가—”

“또 가져간 거야?”

“응. 누군가, 우리 모두가 눈 돌린 그 틈을 파고들었어.”

해골 왕의 은신처

그는 이번에도 실패했지만,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 개의 조각은… 흩어졌고, 다시 만나려 하고 있지.”

그의 뒤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서 있었다.
복면을 쓴 인물. 그 손엔 세 번째 조각이.

“계속 준비해. 마지막 ‘판’은 우리가 짠다.”

천무맹 본부 – 비밀 회의실

메가나이트, 마법사, 머스킷병, 발키리, 그리고 나이트가 둘러앉았다.

“다음 조각의 흔적이… 서쪽 연무성에서 감지됐어.”

발키리가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그 애도 있을 거야. 섀도우 아처.”

나이트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놓치지 않아.”

6장: 그림자에 숨겨진 진실》

달빛이 구름에 가려진 밤, 깊은 산속 한 폐사(廢寺).
그곳엔 아무도 몰래 조용히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검은 외투를 두른 나이트는 폐사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었지.”

낮고 음산한 목소리.
폐사의 어두운 내실에서, 해골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엔 조각—아니, 조각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게… 진짜냐?”
나이트가 조심스레 묻자, 해골 왕은 천천히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는… 누군가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에게만 주어지는 법이지.”

그 말과 함께, 해골 왕은 손에 쥔 조각을 나이트에게 건넸다.
그러나 나이트가 손을 대는 순간—조각은 붉은빛을 내더니,
가볍게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 가짜였군.”
나이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그건 모조품이다. 진짜 조각은 이미… 다른 곳에 있지.”
해골 왕의 눈빛이 번뜩였다.
“다만, 이 모조품이 지금부터 시작될 ‘판’에 불을 붙이기엔 충분할 거야.”

“…그럼 날 이 판에 이용하려는 거냐?”
나이트가 낮게 물었다.

“아니, 넌 스스로 걸어 들어온 거다.”
해골 왕은 미소 지으며 등을 돌렸다.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천무맹도, 암영종도… 널 믿지 않는다는 걸.”

나이트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폐사를 나섰다.

한편, 천무맹 내부.

발키리는 비밀리에 머스킷병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지 않아.”
발키리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안엔 흔들림이 있었다.

“나이트 말이야?”
머스킷병이 물었다.

발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뭔가를 감추고 있어. 하지만 난 아직 믿고 싶어.”

“믿음은 때론 칼보다 날카로울 수도 있어.”
머스킷병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하지만… 나도 아직 그를 믿고 싶다.”

동시에, 암영종의 어둠 속.

로얄 고스트는 다크 프린스에게 어떤 문서를 건네고 있었다.
그 종이에는… 나이트의 밀서와 인장이 찍혀 있었다.

“확실하지 않은가. 그가 우리에게 정보를 넘기고 있었다는 건.”

다크 프린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 아니야. 뭔가 이상해. 이건 함정일 수도 있어.”

“의심하는 건 좋지만, 준비는 해야겠지.”
로얄 고스트가 조용히 말했다.
“왜냐면… 곧 진짜 조각이 나타날 테니까.”

그리고, 깊은 황무지의 장막 속.

해골 왕은 다시 한번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진짜 조각이었다.

“가짜는 판을 움직이기 위한 미끼일 뿐.”
그는 중얼거렸다.

“진짜 조각은… 이 세 판 모두를 무너뜨릴 마지막 열쇠가 되겠지.”

그의 손에서 조각은 은은한 검붉은 빛을 뿜어내며
조용히, 강호의 운명을 흔들 준비를 마쳤다.